박찬욱 감독의 2002년 작품 '복수는 나의 것'은 단순한 범죄 스릴러를 넘어서, 당시 한국 사회에 내재한 구조적 부조리와 소외된 계층의 고통을 담아낸 수작입니다. 이 영화는 '복수'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각기 다른 인물들의 얽힌 감정과 절망, 그리고 비극적인 결과를 따라갑니다. 단순한 선악 구도가 아닌, 모두가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는 구조 속에서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본 글에서는 '복수는 나의 것'이 어떻게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묘사했는지, 그 메시지를 중심으로 분석해 봅니다.
영화 <복수는 나의 것> 사회의 부조리
'복수는 나의 것'의 핵심 플롯은 청각장애를 가진 '류(신하균 분)'가 여동생의 신장이식을 위해 돈을 마련하려다 끔찍한 범죄에 가담하게 되는 과정입니다. 이 설정만 보더라도 영화는 개인의 비극이 아닌,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정면으로 고발하고 있습니다. 신장이식 수술조차 정상적인 절차로는 접근할 수 없을 만큼 의료복지가 미비한 현실은, 극단적인 선택의 도화선이 됩니다. 류는 자신의 신장을 불법으로 팔아 동생의 수술비를 마련하려 하지만, 장기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하고, 공장에서 해고까지 당하면서 그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한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 ‘시스템이 만든 피해자’라는 인식을 갖게 됩니다. 영화는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당시 한국 사회의 복지 부재를 조명합니다. 박찬욱 감독은 복수라는 장르적 틀 안에, 국가 시스템의 책임 방기와 빈곤층이 직면하는 극단적인 현실을 슬며시 끼워 넣습니다.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강렬한 제목 아래에는, 복수 이전에 '구조적 절망'이 먼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셈입니다.
계급 간 갈등
류가 일하던 공장에서 해고당하는 장면은 단순한 직장 상실 그 이상입니다. 불법 해고와 이에 대한 대책 없는 현실, 노조도 없는 환경은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완전히 부정하는 사회 구조를 비판합니다. 특히 영화는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장면들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이 어떻게 무시되는지를 그려냅니다. 이후 류는 부자 사장(송강호 분)의 딸을 납치하면서 사건이 전환점을 맞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계급성'은 영화의 또 다른 핵심 테마입니다. 부유층은 법과 돈으로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반면, 하층민은 절망을 통해 폭력에 노출되고, 결국은 그 폭력이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악순환에 빠집니다. 송강호가 연기한 사장 '박동진' 역시 처음엔 피해자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전개되며 점차 그 역시 사회 시스템의 수혜자이자 또 다른 형태의 가해자라는 점이 드러납니다. 이처럼 영화는 단순한 선악 구도를 철저히 배제하고, 누가 더 나쁘냐는 질문보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게 만든 사회는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집니다.
구조가 만든 폭력
'복수는 나의 것'은 감정적 복수극이 아닙니다. 이 영화는 각 인물의 선택과 폭력이 단순한 분노가 아닌, 구조 속에서 비롯된 필연임을 강조합니다. 박찬욱 감독은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왜 그런 감정이 생겼는지에 대한 배경에 더 집중합니다. 특히 류와 동생, 류의 여자친구 영미(배두나 분)의 관계를 통해 '좌파적 시선에서 본 한국 사회의 모순'이 은밀하게 그려집니다. 영미는 급진적인 사회 운동가로 등장하지만, 그 역시 현실에서는 무기력한 존재입니다. 그녀의 이상은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행동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기도 합니다. 이는 단지 개인의 한계가 아닌, 변화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사회 구조를 암시합니다. 영화는 이처럼 ‘비극은 개인이 만들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여러 층위로 전달합니다. 결국 등장인물 모두가 복수를 행하지만, 그 결과는 파멸뿐입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복수를 정당화하지도 않고, 비난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불가피했음을, 그리고 그 불가피함을 만든 건 사회임을 강조합니다. 폭력의 시작은 '감정'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계 그 자체라는 점에서 '복수는 나의 것'은 지금 봐도 여전히 날카롭고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복수는 나의 것'은 단순한 복수극을 넘어서, 2000년대 초 한국 사회의 부조리와 계급 문제를 강하게 고발한 작품입니다.
박찬욱 감독은 극단적인 서사를 통해 우리가 외면해 온 현실을 정면으로 들이밉니다. 다시 이 영화를 본다면 단지 범죄 스릴러가 아니라, 구조적 폭력에 대한 메시지를 되새길 수 있을 것입니다.